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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등 각 나라별 고대유적들 소개!
고대에 존재했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고대 유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대 유적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역사 애호가부터 여행 애호가까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아래에서는 스톤헨지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대 유적 중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서 골라 따로 나열한 유적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대 유적에 관심이 있다면 꼭 확인해보세요!
스톤헨지 (영국)
영국 남부에 있는 스톤헨지는 몇 가지 수수께끼가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1600년경 사이에 만들어진 고대 유적입니다.
태양주기를 관측하고 숭배하는 '별의 관측소'나 '종교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편, 무게가 수십 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를 바퀴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 등 큰 수수께끼가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특히 일출과 일몰에 이곳을 방문하면 신비로운 스톤헨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리장성 (중국)
기원전 7세기경에는 건설이 시작되었고, 기원전 220년경에는 중국 진시황에 의해 더욱 거대해졌으며, 이후에도 잦은 공사로 규모를 점점 키워가던 만리장성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군사적 목적의 고대 건조물이라고 할 수 있고, 또 2만km가 넘는 길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건조물 중에서도 월등합니다.
매년 1000만 명 이상이 이 만리장성을 찾는다고 하니 중국의 저력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고대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종교 유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인 앙코르와트는 9세기에서 15세기에 번성한 크메르 왕조에 의해 힌두교 사원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12세기에 스리야바르만 2세라는 왕에 의해 힌두교의 비슈누 신을 숭상하기 위해 크메르 왕조의 수도에 건조되었습니다.
서 있는 5개의 원뿔형 탑은 거대한 연꽃 봉오리를 나타낸다고 하니 그 건물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며 보는 것은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입니다.
덧붙여서, 이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이라고 불리는 광대한 유적군에 포함된 하나의 건조물이 됩니다.
폼페이 (이탈리아)
서기 79년에 일어난 베스비오산 분화는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폼페이 마을을 완전히 파괴하고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어 거리를 역사 속에 묻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에 위치했던 폼페이는 고대 로마인들의 관광지와 휴양지적인 장소로 화산재에 파묻힌 결과 고기와 생선시장, 빵집, 목욕탕, 신전, 원형극장 등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매우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고대 유적으로 이탈리아 남부에 갔을 때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페트라 (요르단)
고대의 나바테아인들은 홍해와 사해 사이에 있는 사암 절벽에 훌륭한 페트라라고 불리는 고대 마을을 조각했습니다.
페트라는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드비히 부르크하르트가 1812년 재발견할 때까지 잊혀진 고대 유적으로 실제 발굴된 것은 15%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800개 가까운 무덤, 호화로운 사찰, 교회, 그리고 유명한 보물창고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페트라 유적은 또한 빛의 정도에 따라 유적 벽면의 색이 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 표정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맑은 날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추 피추 (페루)
페루 남부 마을 쿠스코에서 80km가량 북서쪽으로 가면 발견되는 마추픽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잉카 문명시대의 고대 유적입니다.
잉카 문명이 번성할 당시 마추픽추는 가장 중요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다른 잉카 도시들이 남미를 침략해 온 스페인인들에게 파괴된 반면 마추픽추는 그 파괴를 면함으로써 현재 가장 유명한 고대 유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마추픽추 전체를 상공에서 바라보고 싶다면 옆에 있는 와이나픽추라는 산에서 내려다보세요.
아크로폴리스(그리스)
그리스 아테네를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언덕 위의 도시를 뜻하는 말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륜포스 신들을 모신 신역이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기능한 요새이기도 했습니다.
아테네 정치인 페리클레스 아래 기원전 461년~기원전 429년에 지어진 이 일각은 고대 그리스의 부, 권력, 세련미를 떠올리게 하는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 아테나니케 신전, 프로퓨라이어, 일렉테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아크로폴리스는 바로 그리스에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고대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사다 (이스라엘)
유대 사막에 위치한 고대 요새 마사다는 말라 먼지(먼지)투성이 고지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때 유대 왕국을 통치하던 헤로데 대왕의 이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가 쳐들어온 '제1차 유대 전쟁'에서 로마에 대항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전투로 남겨진 로마군의 포위망 흔적이 마사다에게는 남아있으며, 이는 이 땅을 공격한 로마제국의 손톱자국으로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습니다.
덧붙여서 고지에 있다고 해도 현재는 아래에서 로프웨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누구나 마사다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은 인도네시아 제도 중 가장 큰 섬인 자바 섬에 남겨진 불교의 고대 유적입니다.
그 총면적이 1.5만㎡에 이르는 데다 높이는 원래 42m나 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최대의 불교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은 계단 모양의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어 각각의 계층이 깨달음의 단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래로 갈수록 불교의 경분을 나타내는 복잡한 릴리프가 새겨지고, 반대로 높은 계층에서는 종 모양의 불탑 안에 들어간 붓다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예술양식과 신성한 장소를 테라스풍으로 건축하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양식을 접목시켜 지어졌으며 힌두교와 불교의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유적입니다.
엘로라 석굴 사원군 (인도)
인도 마할라슈트라 주에 있는 높은 절벽을 양쪽에서 파고들어 건립된 엘로라 석굴사원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가르침이 고대 인도에서 평화적으로 공생했음을 보여주는 고대 유적입니다.
7세기경에 지어졌으며 34개의 석굴(수도원과 사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이들 석굴의 겉면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놓여 있어 고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탁월한 조각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온화한 붓다와 강력한 힌두교 신들이 싸우는 모습을 그린 조각은 특필할만 합니다.
에페소스 (터키)
터키 이즈미르 현의 셀추크라는 마을 인근에 위치한 에페소스는 과거 동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스 로마식 고대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고대 유적 중 하나입니다.
이 도시는 활발한 무역항을 가졌고 아르테미스 숭배가 성행했습니다.
한편 기원전 2세기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기독교가 수용되면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땅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등 기독교인들에게도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8세기에 이르러 거듭된 아랍인의 공격으로 당시 이 땅을 지배하던 동로마제국은 에페소스를 포기합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이번에는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어 간 것입니다.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성 마리아 교회, 하드리아누스 신전, 로마 시대의 목욕탕, 원형 극장, 그리고 서기 117년에 완성된 켈스 도서관 등을 둘러봅니다.
포로 로마노 (이탈리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모든 길은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있는 포로 로마노로 통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남쪽 파라티노와 북서부 카피톨리노 언덕 골짜기에 펼쳐진 팔로 로마노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전 300년경까지 로마제국의 중심으로 번성했던 곳.
개선 행진, 선거, 연설, 형사 재판, 검투사 경기, 장사 등 국가 정치 경제에 관한 모든 기능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 포로 로마노에게는
타브라리움, 기원전 78년에 지어진 국가 공문서관, 콩코르디아 신전,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지도로 건설이 시작되어 다음 황제 티베리우스가 완성한 신전, 무당들의 집, 2011년 대중에게 공개된 당시 무당들이 살았던 주거지
등을 포함하여 그 밖에도 매우 많은 크고 작은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님의 원형 극장 (프랑스)
오늘날에는 잊혀지기 쉽지만, 로마가 힘을 자랑하던 시절, 로마의 세력은 프랑스(당시에는 갈리아라고 불렸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오늘날 프랑스 남부에 있는 님이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님의 원형극장은 로마의 콜로세움를 모방하여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유구로, 이 극장에서는 글래디에이터 전투와 공개처형 등 로마제국이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한편, 현재도 이 원형극장은 투우나 콘서트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님의 거리에는 원형 극장 이외에도 로마 시대의 다리와 신전 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카르타고 유적 (튀니지)
현재의 튀니지 수도 튀니스와 가깝고 기원전 814년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 카르타고라는 이름의 고대 도시입니다.
로마 제국에 의해 기원후 146년 정복될 때까지 페니키아 문화권의 중심으로 번창했고, 전성기에는 튀니지 만과 아프리카 지역의 중요한 항구 도시로 번영했습니다.
오늘 이 땅을 찾는 여행객들은 당시 항구와 목욕탕, 네크로폴리스(거대한 묘지)와 극장 등 고대 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 (이집트)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남부 사막에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유산인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로 알려진 피라미드는 3개 중 가장 크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동시에 현존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건설 연대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현재는 기원전 2560년경에 건설되었다는 설이 유력하여 이집트 제4왕조 파라오였던 쿠프왕을 위해 건축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덧붙여서, 이 톱니의 대 피라미드 근처에서는 또 하나 유명한 톱니의 대 스핑크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 (짐비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300km가량 남쪽으로 간 짐바브웨 고원 남단에 펼쳐진 것이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
현지의 쇼나인들이 사용하는 쇼나어로 짐바브웨는 돌의 집을 나타내는 것처럼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동서와 남북으로 각각 1.5km로 펼쳐진 큰 석조 건축 유적입니다.
석벽을 가진 건축물 중 일부는 650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건설은 계속되어 9세기경에는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지만, 그 이후에도 15세기 후반에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포기될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 고대 유적에서는 유리제 염주옥과 중국제 또는 페르시아제 도자기, 금제품, 아랍 동전 등이 발굴되었는데, 이들의 발견은 이곳에서 과거 교역이 활발했음을 말해줍니다.
디오클레티오누스 궁전 (크로아티아)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까지 건강 문제를 안고 있던 당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오누스제는 자신의 출생지와 가까운 달마티아(현재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해안 지역 일체)에 여생을 보내기 위한 웅장한 궁전을 건설했습니다.
그것이 디오클레티오누스 궁전입니다.
군살을 다한 이궁은 아드리아해에 면하여 로마 양식과 그리스 양식을 융합하여 로마군 주둔지로서의 기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디오클레티오누스 궁전을 기반으로 한 거리가 펼쳐져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이 어우러진 독특한 고대 유적으로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테오티와칸 (멕시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서는 테오티와칸으로 알려진 고대 유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기원전 2세기부터 6세기까지 번성했던 테오티와칸 문명의 유적으로 당시에는 이곳의 중심적인 도시로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으며 종교도시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실제로 테오티와칸은 현지 나와족의 말로 '신들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전성기에는 20만 명이나 되는 인구를 거느리고, 공동주택이 많이 존재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 테오티와칸에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거대한 구조물도 남아 있어 방문객들을 즐겁게 합니다.
티칼 (과테말라)
중앙아메리카 북부 과테말라에는 마야인들이 세운 정글의 거리 티칼의 고대 유적이 존재합니다.
서기 4세기에서 9세기경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서기 900년경에 왠지 포기되었고, 그 후 17세기 말에 다시 스페인 수도사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매우 오랫동안 정글에 삼켜졌습니다.
번영을 이루던 당시에는 마야문명에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도시가 되기도 했고, 가장 많은 시간에 약 6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등 마야문명에서 가장 큰 도시로 기능했습니다.
모아이상 (칠레)
남미 칠레에 속한 이스터 섬에서 고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크고 무거운 모아이 석상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크기는 보통, 3.5m, 20t입니다. 가장 큰 것은 길이 20m, 무게 90톤이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모아이 석상은 섬의 동쪽인 라노 라락의 암석 기반에 채굴되어 조각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석상이 어떻게 그곳에서 섬의 나머지 지역으로 옮겨져 받침대에 놓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아이 석상의 목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없어 수수께끼를 품은 고대 유적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스톤헨지 등 각 나라별 고대유적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