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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반도 여행을 위한 위치 관광 역사에 대한 정보!
이집트에 속한 지역 중 하나는 시나이 반도입니다.
그곳에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며,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자주 주목을 받았던 곳입니다.
특히 중동과 이집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며 현재 이집트의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래에서는 시나이 반도 여행을 위한 위치 관광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시나이 반도란?
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는 이집트 북동부와 이스라엘 남서부 끝을 연결하듯 위치하며 북쪽은 지중해, 남쪽은 홍해에 면하는 반도.
이집트 쪽에 수에즈 운하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서아시아의 아라비아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이었던 곳으로 홍해 쪽으로 병따개 뚜껑 모양으로 내민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척박한 사막지대가 펼쳐져 그 크기는 대략 6만㎢.
한편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지역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고, 그 이유는 이 반도가 산이 많은 지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는 도시나 마을도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는 행정상 이집트·아랍 공화국에 속하며 현재 인구는 약 140만 명으로 이집트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도 유명합니다.
시나이반도는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이며, 특히 구약성경 속에 나오는 모세가 신으로부터 10가지 계율을 부여받은 시나이산은 시나이반도에 있어 아브라함의 종교라 불리는 유대교 이슬람교 신도들에게는 종교적 의미가 있는 땅입니다.
이것이 또한 시나이 반도를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만들고 있습니다.
참고로 1960년에 실시된 이집트 인구 조사에서는 시나이 반도의 인구는 약 5만 명 정도였지만, 현재는 주로 관광업의 발전으로 그 인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그 결과 원래 이 반도 인구의 다수파를 차지했던 베두인(아랍계 모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들은 현재 소수파가 되었습니다.
※시나이 반도의 인구는 2013년 통계에서 약 59만이라는 숫자가 있는데, 이는 시나이 반도를 둘로 나눈 북시나이 현과 남시나이 현의 행정구역에 사는 인구만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에 서시나이(포트사이드, 이스마일리아, 수에즈의 행정구에 편입된 시나이 반도의 일부)의 인구를 더하면 실제로는 140만명 가까운 인구 규모가 된다고 여겨집니다.
시나이 반도 위치 지도로 확인
시나이 반도는 북쪽을 지중해, 남쪽을 홍해, 남동쪽을 아카바 만, 동쪽을 이스라엘, 서쪽을 수에즈 만에 인접해 있는 반도인데 실제로 그 장소를 지도상에서 확인해 볼까요?
반도의 동쪽이 이스라엘(ISRAEL)과 인접하고 아래쪽이 홍해(Red Sea)를 향해 돌출한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서쪽은 수에즈만(Gulf of Suez)에 인접해 있어 좀 더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시나이 반도의 중심부에서 카이로까지는 약 280km 거리입니다.
아래는 게다가 수에즈 운하의 장소나 지역 주변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도입니다.
시나이 반도의 역사 요약
시나이 반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통상 경로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기원전 3100년경 고대 이집트 제1왕조시대부터 현재까지 기본적으로 이집트에 속해온 오랜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그러나 중간에 합치면 500년 정도 다른 나라에 의해 실질적인 지배가 이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에, 예를 들어 고대에는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나 고대 로마 제국 등이, 근대에 있어서도 해의 오스만 제국(1517-1867년)이나 영국(1882-1956년)이 시나이 반도를 지배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1956-1957년 제2차 중동전쟁,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은 모두 시나이반도가 주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정학적인 이유로 각국의 속셈이 엇갈려 다툼이 여러 차례 일어난 역사를 가진 시나이반도이지만 1979년 3월 29일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된 이후 평화롭고 안정적입니다.
※평화조약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계쟁지였던 남시나이의 타바에는 군대를 계속 파견했지만 타바도 1989년 이집트로 반환되었습니다.
시나이 반도의 관광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된 이후로는 정세가 안정되었기 때문에 시나이 반도는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그 큰 이유는 '자연 환경', 바다의 풍부한 산호초', '성경'에 등장하는 역사 의 3가지입니다.
파스텔 색상의 절벽과 협곡, 척박한 계곡과 선명한 녹색 오아시스, 사막과 빛나는 바다 사이의 해변, 그리고 형형색색의 산호초에는 풍부한 바다 생물들이 몰려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리조트 목적으로 방문합니다.
예를 들어, 샤름 엘 셰이크, 다합, 누웨이바 등의 비치 리조트는 유명합니다.
또한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로서 모세가 신의 계시를 받은 시나이산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도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 카탈리나 수도원(시나이산 근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덧붙여서,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스라엘의 에이라트를 경유하여 샤름 엘 셰이크 국제공항에 내리거나 카이로에서 육로 또는 요르단의 아카바에서 페리를 타고 옵니다.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관해 알고 싶은 다섯 가지 사항
시나이 반도에 관한 기본 사항을 소개해 왔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더 시나이 반도에 대한 지식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4월 25일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소중한 날
시나이 반도가 이집트 행정지구인 한 4월 25일은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1967년에 일어난 제3차 중동전쟁은 6월 5일부터 6월 10일까지 6일간 계속되었지만, 지난 6일간의 전투가 종결되었을 때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이 체결된 결과 1982년 타바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함으로써 이스라엘의 15년에 걸친 시나이반도 지배는 종료되었습니다.
1982년 이스라엘의 손에서 이집트의 손으로 시나이 반도가 반환된 날이 4월 25일로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시나이 반도 반환의 중요한 기념일입니다.
이집트인들에게 매년 4월은 시나이 반도 반환의 날만이 아니다
4월은 샤르키야현의 작은 마을 바하르 엘 바카르(Bahr Al-Baqar)에 사는 많은 이집트 가정에 아픈 일을 상기시키는 달이기도 합니다.
1970년 4월 8일 이스라엘군 전투기의 습격으로 마을의 많은 아이들이 무참히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미제 F-4 팬텀Ⅱ가 이 지역 초등학교를 공습해 34명의 아이들이 살해되고 최소 50명 이상이 다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목구멍에서 손을 잡고 싶어했던 시나이 반도
역사 부분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시나이 반도를 무대로 수많은 전쟁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1948 - 1949년 제1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북부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이때는 이집트를 영향권으로 하고 있던 영국과 그 뒤에 붙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이스라엘군은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는 형태가 됩니다.
1956년에는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여 이스라엘,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3개국에 의한 이집트 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전쟁 직후 이스라엘 측은 시나이 반도의 대부분을 획득하지만, 그 후 바로, 또다시 미국의 압력에 직면해 그것을 철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67년 발생한 제3차 중동대전 이후 시나이반도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놓이게 됩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었던 이유라는 것이 바로 지정학적 중요성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1973년에 일어난 제4차 중동전쟁에서 시나이반도가 이스라엘의 전략적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십계명과 시나이산
모세의 십계명과 시나이산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시나이반도를 이야기하는 데 중요할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적 지도자였던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처럼 취급되던 히브리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많은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을 찾아 이집트 탈출을 기도합니다(출이집트).
그리고 그 길 중 시나이 반도에 있는 시나이 산 위에 나타난 신이 나타나고 10개의 계율이 적힌 두 개의 석판이 모세에게 맡겨지는 것입니다.
모세의 십계명은 이후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되었고, 특히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제시된 지켜야 할 계율로서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며, 또한 이 사건이 일어난 시나이산도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터키석의 나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나이 반도를 '터키석의 나라', '마프카트'라고 불렀습니다.
시나이 반도에서 터키석이 채굴되었던 특히 세라비트 엘 카딤(Serabit El Khadim), 와디 마가라(Waki Magharah)와의 현지 광산에서 잘 채굴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두 광산의 채굴은 간헐적이었기 때문에 지난 수천년 동안 터키 채굴의 거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장량도 줄어들고 있어서 채굴을 해도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시나이 반도 여행을 위한 위치 관광 정보였습니다.